필기를 빌려야 하는데 말이 잘 안 나오고, 같이 가자는 여행은 미안해서 “생각해 볼게”로 넘길 때가 있죠. 부탁과 거절은 말하는 순서를 정해 두면 한결 쉬워져요. 근거로 삼은 자료는 글 끝에 적었고, 나머지는 생활 조언이니 상대와의 사이나 분위기에 맞게 고쳐 써 주세요.
부탁은 상황, 부탁, 이유, 고를 여지 순서로
- 상황 지금 사정을 한 줄로 알려요.
- 부탁 무엇을, 언제까지 해 주면 되는지 말해요.
- 이유 왜 필요한지 짧게 덧붙여요.
- 고를 여지 어려우면 거절하거나 방법을 바꿔도 된다고 알려요.
이유가 짧으면 “~해서 그런데”처럼 부탁 앞에 붙여도 돼요. 여지를 줄 때도 꼭 필요한 기한은 남기고, 방법이나 시간을 고르게 해요.
말끝도 느낌을 바꿔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겠-’을 ‘완곡하게 말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어미’로도 풀이하고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를 예로 들어요. 윗사람에게는 “봐 주세요”보다 “봐 주시겠어요?”처럼 묻는 꼴이 부드럽게 들려요.
끝인사도 자리에 맞춰요.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릴게요’가 모두 문법에 맞고, 앞의 것은 하십시오체 자리에, 뒤의 둘은 해요체 자리에 쓸 수 있다고 답했어요.
장면별로 바꿔 보는 부탁
친구에게 필기를 빌릴 때
- 이렇게 말하면 “어제 필기 보내 줘.”
- 이렇게 바꾸면 “나 어제 병원 가느라 수업을 빠졌어. 3교시 필기 사진 좀 보내 줄 수 있어? 시험 범위라서 꼭 봐야 하거든. 오늘 바쁘면 내일 아침까지만 줘도 돼.”
짧은 말에는 어느 수업인지, 언제 필요한지가 빠져 있어요.
팀 과제에서 역할을 부탁할 때
- 이렇게 말하면 “발표 날 화면은 네가 넘겨.”
- 이렇게 바꾸면 “목요일 발표 때 화면 넘기기를 맡아 줄 수 있어? 내가 말하면서 넘기면 순서를 자꾸 놓쳐서. 어려우면 연습 때 신호만 같이 맞춰 줘도 좋아.”
정해 주듯 말하면 상대는 고를 틈이 없어요. 다른 방법을 하나 열어 두면 자기 사정을 말하기 쉬워요.
가족에게 택배를 부탁할 때
- 이렇게 말하면 “내일 택배 와. 받아 놔.”
- 이렇게 바꾸면 “내일 오후에 택배가 오는데, 집에 있으면 받아 줄 수 있어? 냉장 식품이라 오래 두면 안 되거든. 나가게 되면 말해 줘.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가까운 사이일수록 부탁이 짧아져 지시처럼 들리기 쉬워요.
메신저로 선배에게 부탁할 때
- 이렇게 말하면 “선배, 바쁘세요?”만 보내고 기다리기
- 이렇게 바꾸면 “선배, 저 사진 동아리 신입 ○○예요. 지난 공연 사진 원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동아리 소개 자료에 넣으려고요. 이번 주 안에만 보내 주셔도 괜찮아요.”
누구인지와 용건을 한 메시지에 담으면 상대가 읽자마자 답을 정할 수 있어요.
부탁을 들어줬다면 고마움으로 마무리해요.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의 2025년 답변은 윗사람에게 하는 인사말에 ‘수고하다’를 쓰는 걸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 온 예절 관행을 소개해요. 다만 실제로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과 자리마다 달라요. 어떻게 들릴지 망설여진다면 “수고하셨습니다” 대신 “자료를 봐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처럼 해 준 일을 넣어 고마움을 말해 보세요.
거절은 고마움, 거절, 이유, 대안 순서로
- 고마움·공감 나를 떠올려 준 마음을 먼저 받아요.
- 분명한 거절 “어려워”, “못 가”처럼 답이 보이게 말해요.
- 짧은 이유 한 줄이면 충분해요. 길어지면 답이 묻혀요.
- 대안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나만 내밀어요. 없으면 빼도 돼요.
미안해서 “생각해 볼게”, “그때 봐서”로 미루면 상대는 ‘아마 된다’로 듣고 계획을 이어 갈 수 있어요.
친구 다음 달에 바다 보러 가자! 숙소 2인실로 잡을까?
- 이렇게 말하면 “음… 생각해 볼게.”
- 이렇게 바꾸면 “같이 가자고 해 줘서 고마워. 이번 여행은 못 가. 그 주에 시험이 있거든. 다녀오면 밥 먹으면서 사진 보여 줘.”
“생각해 볼게”를 들은 친구는 2인실부터 잡아 둘 수도 있어요. 국립국어원 『새국어생활』(2018년 봄)에 실린 직장 의사소통 글도, 돌려 말한 뜻을 듣는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면 의도가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의사소통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짚어요. 답이 정해졌다면 일찍, 분명하게 말해 주세요.
쿠션어 뒤에는 부탁을 바로 말해요
‘혹시’, ‘시간 괜찮으면’, ‘미안한데’처럼 부탁 앞에 덧대는 짧은 말을 흔히 쿠션어(완충 표현)라고 해요. 처음 연락할 때, 상대의 시간이나 손을 빌릴 때, 이미 세운 계획을 바꿔 달라고 할 때 말이 부딪히지 않게 받쳐 줘요.
다만 지나치면 오히려 거리감이 생겨요. “정말 죄송한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바쁘신 거 아는데…”까지 듣고도 상대는 무슨 부탁인지 몰라요. 매일 보는 친구에게 “번거로우시겠지만”을 쓰면 남처럼 들리고, 사과할 일이 아닌데 “죄송한데”를 붙이면 작은 부탁도 무거워져요. 쿠션어를 붙였다면 바로 다음 말에서 부탁을 꺼내요. 이미 “~해 줄 수 있어?”처럼 물었다면 쿠션어가 없어도 괜찮을 때가 많아요.
서운함은 ‘나’로 시작해요
‘나 전달법’(I-message)은 상대를 평가하는 대신 내게 일어난 일을 말하는 방법이에요. 임상심리학자 토머스 고든(Thomas Gordon)이 만들었고, 그가 세운 고든 트레이닝 인터내셔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을 말할 때의 나 전달법을 세 부분으로 설명해요. 탓하지 않고 짧게 말한 상대의 행동, 내 느낌,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친 구체적인 영향이에요.
- 너로 시작하면 “너는 왜 맨날 마음대로 올려?”
- 나로 시작하면 “어제 네가 단톡방에 내 사진을 올린 걸 보고 많이 당황했어. 다른 방까지 퍼져서 지워 달라고 연락하느라 저녁 내내 정신없었어. 다음엔 올리기 전에 한 번만 물어봐 줘.”
‘맨날’, ‘너는 왜’는 행동보다 사람을 겨눠서 듣는 쪽이 방어하기 쉬워요. 끝에 바라는 행동 하나를 붙이면 다음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전해져요. ‘나는’으로 시작해도 “나는 네가 생각이 없다고 느껴”처럼 평가가 섞이면 탓하는 말이 돼요.
메신저로 부탁하고 거절할 때
메신저에는 표정도 목소리도 없어서 글자만으로 뜻과 마음을 함께 전해야 해요.
- 답이 늦어질 때 “봤어! 내일 오전까지 알려 줄게.”처럼 받았다는 신호와 답할 때를 먼저 보내요.
- 거절은 미루지 않기 읽어 두고 답을 미루면 상대는 계속 기다려요. “알려 줘서 고마워! 이번 공동 구매는 빠질게.”처럼 짧게라도 먼저 보내요.
- 이모티콘은 표정까지만 웃는 이모티콘이나 ‘ㅎㅎ’는 말투를 누그러뜨릴 뿐이에요. 안 된다는 뜻은 글로 분명히 적어요.
- 용건과 기한이 한눈에 보이게 길어지면 부탁이 묻혀요. 사정이 길거나 마음 상한 이야기는 “통화로 얘기해도 될까?” 하고 자리를 옮겨요.
답장 속도로 생기는 오해는 단톡방 답장 속도로 생기는 오해에 정리해 두었어요. 장면마다 목적에 맞는 한마디를 직접 골라 보고 싶다면 무례하지 않게 말 고르기 능력고사를 풀어 보세요. 속상한 친구에게 건넬 첫마디가 고민이라면 공감 먼저? 해결 먼저? 상황별 대화 예시도 함께 읽어 보세요.
참고한 자료
모두 2026년 10월 25일에 확인했어요.
- 국립국어원 · 새국어생활 2018년 봄, 일반 사회(공공장소)에서의 언어 예절
- 국립국어원 · 새국어생활 2018년 봄, 직장 내 의사소통의 양상과 개선 방향
-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 직장 상사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답변(2025. 4. 19.)
-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 ‘-겠-’의 쓰임 답변(2025. 6. 19.)
-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 ‘잘 부탁드립니다’ 답변(2026. 2. 19.)
- Gordon Training International · I-Message의 구성 요소
- Gordon Training International · 토머스 고든 소개
